공연. 전시...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전 .... 130805.

헤라써니 2013. 9. 1. 00:44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에게 유명 전시 공연이란!~~

방학숙제를 위한 부담과 책임감??에 빠진 공연과 전시에 불과 했었다.

아!~~ 이 슬픈 현실... 물론 내가 자초한 일이였지만... ㅋㅋ

(이러했기에 정말 열씨미 부지런히 다니고 투자?? 했었다)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전'

 

또한 숙제??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지면서 이런 전시가 열리는줄도 모르고 있었던 이 무관심...^^;;

갑자기 서글퍼 지기도 하거니와 왠쥐 내 자신이 넘 불쌍타 싶네....ㅠㅠ

 

옆지기가 쑥 내민 티켓 들고

모처럼만에 울 가족들 넘 자유로이 편안히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

 

 

 

 

 

 

 

 

 

 

 

 

역쉬나 전시실 입구 근처엔 아이들을 델꼬 온 학부모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우리 아이들이 그랬던거처럼 부모 손에 이끌려 온(아닐수도 있구..) 모습이

옛추억을 떠 올리게 웃음이 났다... 귀여워!~~

 

 

 

 

 

 

 

"황색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고갱의 3대걸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1897 - 1898

설교후의 환상(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 1888

황색의 그리스도 / 1889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1897 - 1898

 

제작 과정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인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고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그려진 대작이다.

당시 그는 악화된 건강과 생활고, 그리고 사랑하는 딸의 죽음으로 인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살을 결심했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그리고자 마음먹는다.

고갱은 열정에 사로잡혀 한 달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품에 몰두하였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악의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남은 “모든 정력을 이 작품에 쏟아 부었다”고 쓰기도 했다.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는 고갱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작가는 작품 위쪽의 모서리에 진한 노란색의 물감을 칠해, 왼쪽에는 작품의 제목을 쓰고 오른쪽에는 서명을 하였다.

고갱은 작품을 제작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과정인 스케치를 생략했다.

그는 “퓌비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 1824-1898)와 같이 자연을 스케치하여 밑그림으로 삼는 짓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가는 오직 자신의 상상에 의존하여 작품을 완성하고자 하였으며, 하나의 모델이나 전통적 기법과 같은 '법칙'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다.

실제로 작품 속 인물들은 정확한 원근법에 의해 표현되지 않았고, 작가 역시 자신의 작품이 가지는 '수학적 결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무의식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 작품이 이전에 자신이 그린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역작이라고 생각했다.

 

구성요소 및 의미

고갱은 1898년 2월, 지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작품의 세부적인 구성과 의미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등장인물들은 고갱이 원시의 이상향을 찾기 위해 문명을 버리고 선택한 남태평양의 타히티로부터 온 것이다.

작품의 오른쪽 전경에는 잠들어 있는 아기와 함께 세 명의 여인이 앉아있다.

그 뒤로는 보라색 옷을 입은 두 여인이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고 있다.

이들의 앞에는 의도적으로 잘못된 원근법을 적용시킨 인물이 오른쪽 팔을 들어올리며 앉아 있다.

그 옆에는 작품의 세로축을 형성하고 있는 건장한 체격의 인물이 과일을 따는 제스처를 취한다.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앉아 있는 한 소녀는 과일을 먹고 있으며 그 옆에는 흰 산양 한 마리도 있다.

그 뒤로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리고 있는 신비로운 여신상은 피안의 세계를 가리키고 있는 듯 하다.

오른팔을 땅에 짚고 앉아 있는 여인은 이 여신상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그 옆의 노인은 두 팔로 얼굴을 감싼 채 괴로워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의 3단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오른쪽 전경의 아기와 중앙의 과일을 따고 있는 인물, 그리고 왼쪽 끝의 죽음을 앞둔 노인이 그것이다.

하지만 고갱은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이 수수께끼 같은 세계의 세부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구체적인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명상적으로 감상되고 경험되기를 원했으며,

그가 헛된 것이라 여기는 말로서 작품을 정의 내리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이다. .... (인터넷 검색)

 

 

황색의 그리스도 / 1889

 

표현기법

고갱은 1889년 가을, 프랑스의 퐁타방(Pont-Aven)에서 이 그림을 완성했다.

작품은 강렬한 노란색이 주가 되며 붉은색과 녹색이 함께 어우러져 가을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커다란 십자가와 대담한 노란색으로 채색된 그리스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세 명의 브르타뉴(Bretagne: 프랑스 북서부의 반도) 여인이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종교적 명상에 잠겨 있다.

 고갱의 초기 풍경화들을 살펴보면, 당대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색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점차 화면의 구성을 단순화시키고 붓질이 거의 보이지 않는 넓은 색면을 그리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양식을 창조해 나가는데,

《황색의 그리스도》역시 이와 같은 양식적 변화가 이루어진 작품 중 하나이다.

밝고 강렬한 원색과 평면화된 공간,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체를 감싸는 검은색의 윤곽선 등은 고갱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기법은

고갱이 프랑스의 화가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 1868-1941)의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 대담한 평면의 색면과 강한 선)을 받아들인 것으로,

 이는 구획된 부분을 채색하는 칠보기법인 클루아조네(cloisonné)에서 유래한 것이다.

《황색의 그리스도》는 후에 그를 추종한 젊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모델로 작용했다.

특히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1870-1943)은 고갱의 영향으로 반인상주의 화가집단이었던 나비파(Nabis)를 결성하여,

그의 작품에서 선과 색을 하나의 독립된 조형요소서 중시하였다...(인터넷 검색) 

 

 

설교후의 환상(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 1888

 

표현기법

화면 전체를 뒤덮는 붉은 색은 이 그림이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고갱은 몇 가지 기법적 장치를 통해 한 화면에 뒤섞여 나타난 현실과 상상의 장면을 구분 짓는다.

기도하는 여성을 그린 현실의 장면에서는 입체감을 살려 그린 반면,

야곱과 천사의 결투 장면은 매우 평면적이고 전경의 현실의 장면과 비례가 맞지 않게 그림으로써

두 장면이 다른 세계임을 암시한다.

또한, 전경과 원경 사이의 공간을 생략함으로써 두 영역 간의 구분을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고갱은 반 고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러한 작품의 구성에 대해

"이 그림의 풍경과 결투 장면은 설교 후에 기도하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려진 사람들과 부자연스럽고 비율이 맞지 않는 결투 장면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대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하기 위해 형체의 윤곽선을 다소 흐리게 하고

분할된 붓터치로 빛과 공기를 표현했던 반면,

고갱은 이와 반대로 윤곽선을 명확히 하고 모든 것을 평면적인 색면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선명하고 원색적인 색채와 원근과 입체가 부정된 평면화된 색면,

검은 윤곽선의 사용은 고갱과 베르나르(Émile Bernard, 1868-1941)가 함께 완성한 '클루와조니즘(Cloisonnisme)' 기법으로,

일본 판화와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작품의 구성은 일본 판화를 많이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상상의 장면과 현실을 경계 짓듯 화면의 중간을 과감하게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나무의 배치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은 일본판화에서 흔히 보이는 구성이다.

특히 천사와 야곱의 씨름 장면은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의 작품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 (인터넷 검색)

 

 

"타히티의 여인들"

 

고갱은 타히티에 있는 처음 몇 개월간 현지인의 태도와 얼굴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사물을 그려서 목록으로 만든 후 그림 그릴 때 소재로 삼곤 했다.

작품 속 두 명의 '타히티 여인들' 은 실제로는 한 명의 모델에게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게 하여 완성한 것일지도 모른다.

황금색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한 그림의 뒤쪽으로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지며 인위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펼쳐진 배경을 열대 지방을 연상케 하는 색채를 사용하여 표현함으로써

정확히 묘사하지 않아도 현지의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림 윗부분까지 색색의 층으로 표현된 배경은 평면감을 주며,

이로 인해 두 명의 타이티 여인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고갱은 작곡가가 소리를 만들 듯, 색채를 진동시키며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분홍과 주황, 노랑, 초록을 연결한 대담한 채색 방식은 마티스 화풍의 전조가 되었다.

이 그림은 타히티에 군복무를 하러 왔다가 상인으로 눌러 앉은 샤를 아르노 대위에게 1982년에 팔렸다.

 고갱은 '하루의 소식' 이라는 뜻의 타히티어 파라우 아피라는 제목으로 «'타히티의 여인들' 을 변형시킨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 (인터넷 검색)

 

 

시립미술관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꽃'...

 

 

 

 

 

 

 

 

 

 

 

울옆지기 비싼거?? 쏜다며 이리 증거를 남기네!~~ ㅋㅋ

종로 '하코야 씨푸드'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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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름용 교복치마 입고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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